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뤼순 공방전 (문단 편집) == 다롄에서 뤼순까지 == 뤼순 항과 대륙을 잇는 지역의 러시아군 거점들은 이미 5월 초에 일본군의 타격을 받은 바 있다. 이는 뤼순이 일본군의 주요 상륙 거점인 다롄에 매우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. 특히 뤼순과 육상을 연결하는 진저우는 다롄을 보호하고 뤼순에 주둔하고 있었던 러시아군이 다롄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략해야 할 곳이였다. 따라서 다롄에 상륙한 제2군은 오쿠 야스가타(奧保鞏) 대장의 지휘 하에 진저우를 공략하였고, 해군의 지원까지 받아가면서 이를 공략하여 5월 26일 하룻동안의 격전 끝에 이를 점령하였다.[* 러시아 전사연구소에서 제작되고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번역된 <러일전쟁사>에서는 진저우에 제대로 보루를 건설하고 준비했더라면 소수의 병력으로도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위치였는데 하루 만에 내주었다고 러시아군 지휘부를 비판하고 있다.] 이후 뤼순 항의 러시아군은 일본군이 지상에서 뤼순을 공략하려 시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으나 일본군은 이를 공격하지 않았다. 오히려 벤저민 외그너 뇌르가르(Benjamin Wegner Nørregaard. 1861~1935) 등 이 전투를 관전한 다수의 군사평론가들은 다롄에 있었던 일본군은 당시 뤼순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에 비해 약세였으며, 러시아군이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증언하고 있다. 본격적으로 뤼순 항 공략 명령이 하달되자 제3군은 7월부터 해군의 포격 지원을 받아가면서 전진해 나아갔고, 7월 말에는 뤼순 항의 방어라인까지 러시아군을 밀어넣을 수 있었다. 이 과정에서 러시아군의 방어진지를 돌파해야 했던 일본군은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으나, 러시아군의 방어진지들이 그리 훌륭하지 못했기에 일본군에 의해 어렵지 않게 제압되어 나갔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300px-Map_of_the_Advancement_of_the_Japanese_3rd_Army.jpg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